회사에서 뭔가 일이 터지면 ‘제발 내 책임이라고 하지마!’라고 속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죠? 이제 책임이 분명해지게 됐습니다. 새로 도입 예정인 ‘책무구조도’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금융권에서는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임직원 횡령 및 배임, 고객 정보 유출 등 다양한 금융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명확한 책임 소재를 밝히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도입된 게 책무구조도입니다. 

금융감독원에서 책무구조도 업무를 담당했던 법무법인 호암 박선영 변호사는 “내부통제 위반에 대한 개인 책임이 강화되었으므로,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문서화하고 외부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등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증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며 “단순히 '몰랐다' 또는 '보고받지 못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므로, 책무 영역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감독과 리스크 체크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전에 위법행위를 방지하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금융권의 중대재해처벌법... 아니, 더 무서운 녀석!

금융권에서는 이 제도를 '금융권의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제도는 분명 유사점이 있습니다. 둘 다 최고경영진의 예방 의무를 강조하고, 사고 발생 시 개인 책임을 명확히 하며, 시스템적 실패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은 더 엄격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 중대재해처벌법 : "누군가 다쳤을 때 책임져!" 
• 책무구조도 : "평소 안전 관리에 소홀하면 책임져!"

'책무'와 '업무'는 달라요! 이제 '그냥 일만 했어요'는 통하지 않습니다

'업무'는 그냥 "대출해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책무'는 "이 대출이 적법한지, 위험은 없는지, 모든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책무(Responsibility)’는 단순한 ‘업무(Task/Work)’와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금융사지배구조법에서 책무는 '금융관계법령등에 따라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 및 운영에 대한 책임'으로 정의됩니다.

예컨대, 대출 업무 담당 임원의 경우 대출 실행이라는 '업무'를 수행하지만, 그의 '책무'는 대출 심사의 적정성 확보, 관련 법규 준수 여부 점검, 부실 대출 방지를 위한 위험관리 절차 운영 등 내부통제 시스템의 효과적인 작동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임원의 책임을 단순한 업무 수행에서 벗어나 해당 업무를 둘러싼 통제 환경의 관리 및 감독 의무를 부여하죠.

이러한 책무 개념의 도입은 임원의 책임을 단순한 업무 수행에서 벗어나 해당 업무를 둘러싼 통제 환경의 관리 및 감독으로 확장시킵니다. 이는 금융회사 임원들에게 자신의 직접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관리 영역 전체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즉, 금융 임원들은 이제 자신의 부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아래에서 보고 없이 했어요. 몰랐어요"라는 변명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

'상당한 주의'의 법적 의미와 실무적 중요성

책무구조도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 중 하나는 제재 감면 요건인 ‘상당한 주의(Reasonable Care)’의 해석입니다. 

개정 지배구조법 제35조 및 제35조의2에 따르면, 임직원이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 위반의 원인이 된 법령 위반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를 다한 경우에는 제재를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은 임원들에게 일종의 '구명조끼'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책임이 무한정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고, 성실한 의무 이행 노력을 입증할 경우 방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몇 가지 예시를 들어줬는데요.

신규 사업, 투자, 상품 추진 시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유관부서의 의견에 대해 리스크 해소 방안을 검토하고, 필요시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 자문을 구하라고 명시했습니다. 이어서 관련 부서의 재확인을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진행했음이 문서와 기록으로 확인된 경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신규 업무 추진이나 기존 업무 관행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법령 해석의 쟁점에 대해 사전에 감독당국과 충분히 협의하여 의사결정한 경우도 긍정적 요인으로 간주하죠. 

그러나 실행 초기 애매한 부분이 없을 수 없죠. 그럼 '상당한 주의' 여부를 위반했다며 처벌 될 때는 어떤 부분들이 검토될까요? 우리 금융당국에서도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 할 것 같은데요. 금융 선진국인 영국은 '고위 경영진 및 자격 인증 제도(Senior Managers & Certification Regime, SMCR)' 하에서의 '합리적 조치'를 법규화된 구체적인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상당한 주의'는 보다 광범위한 법적 개념으로,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 BJR)'과 깊게 연관된다고 알려져 있죠.

이렇게 보면 우리 제도는 영국의 ‘법규’와 더욱 유사한데요. 영국에서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볼게요.

마이그레이션 준비 과정에서 여러 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바르카는 SABIS로부터 받은 보증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TSB 이사회에 마이그레이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2018년 4월 마이그레이션 실행 후 심각한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여 많은 고객들이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었습니다. 

PRA(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 건전성 감독청) 조사 결과, 아바르카는 고위 경영진 행동 규칙(SMCR)을 위반했다고 판단되어 8만 1,62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TSB 은행도 4,865만 파운드의 공동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이는 PRA가 고위 경영진 행동 규칙 위반으로 개인에게 제재를 가한 첫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지만 영국에서도 '합리적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고, 소형 금융기관에는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도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향후 금융당국의 제재 사례나 법원의 판례를 통해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 금융권은 지금?

금융권은 지금 비상대응 모드입니다. 신한은행이 2024년 9월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며 ‘모범생’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다른 은행들도 빠르게 책무구조도를 대부분 제출한 상황인데요. 지난 4월 14일 기준, 총 53개 금융회사가 시범운영에 참여 중입니다. 

KB국민은행은 아예 'KB책무관리실'까지 신설했습니다. 직원들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지만, 대형 은행의 이런 사례는 매우 중요해요. 증권사나 제2금융권 등이 따라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이 생기는 거니까요🙄

이런 책무구조도는 단기적으로는 금융권 임원들에게 "이제 숨을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책임감 있고 투명한 금융 문화를 만드는 긍정적인 변화가 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이것은 금융권의 ‘신뢰회복’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금융권은 실수해도 "내 책임 아니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실수는 내가 책임진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니까요👔